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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들의 증언) 김주철은 왜 교회 공금 수백만원을 가져갔나?
운영자 23-12-28 12:14 194 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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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네이버 카페 한국교회 피해자모임에 게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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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면 엄수인은 대단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안상홍님이 그녀를 제명하기 위해 총회를 열고 그녀를 총회에 출석시켜 장로들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할 기회를 주신 것도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만큼 안상홍님은 한 영혼의 구원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으며 성경의 말씀에 입각하여 처리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어느날 교회에 가니 문을 걸어잠그는 희한한 사람들하고는 다른 분이셨다. 뒤에서 없는 험담을 만들어 퍼뜨리고 모함하고 중상모략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따르던 목회자들을 내치는 사악한 집단과는 다른 분이셨다.


각설하고 엄수인이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나가 별도로 교회를 세우자 부산교회의 교세는 매우 연약해졌다. 상당수의 일꾼들이 엄수인을 따라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부산교회의 복음은 상당기간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서울에서는 장길자 전도사를 중심으로 전도 열기가 활발했다. 포항출신 청년들이 주력부대가 되었으며 이원순(당시 파출소장), 이강민(전직교감) 등 일꾼들이 전도되어 들어왔던 시기도 이때 이다. 안상홍님은 서울교회를 자주 방문하고 서울교회의 전도 열기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길자는 이 세력을 업고 엄수인이 주장하다가 쫓겨난 어머니 하나님 즉 신부교리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상홍님이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그러한 자신의 숨겨진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줄기차게 시도를 했을지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자신이 어머니 하나님으로 추앙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안상홍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절대적으로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엄수인과 다른 점이었다.


엄수인은 안상홍님을 너무 늙어서 제대로 가솔을 돌볼 수 없게된 이삭의 말년에 비유하고 이제는 자신이 교회를 이끄는 시대가 된 것처럼 주장하였다. 안상홍님을 딛고 넘어가려는 엄수인과 안상홍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올라가려는 장길자는 안상홍님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진 셈이다. 엄수인은 자신의 책자까지 내며 주장을 펼치고 맞서다가 제명되었고 장길자는 속마음을 숨긴 채 신임을 쌓으며 때를 기다렸다. 


장길자의 속내를 짐작하셨는지 알 수 없으나 안상홍님은 서울에 다녀오실 때마다 부산교회에서 수차례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설교를 하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문선명도 안되고 박태선도 안되고 내 이름으로도 안된다"며 예수님의 이름만이 구원자의 이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하신 설교이다. 부산교회 증인들의 말에 의하면 서울에 다녀오신 안상홍님이 갑자기 그런 설교를 하셔서 당시로는 매우 생뚱 맞게 그 설교를 들었다는 것이다. 안상홍님이 서울교회에 갔더니 교인들이 일제히 큰절을 하더라는 소문이 들려온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나 1985년 2월 갑자기 안상홍님은 쓰러지셨고 부산교회보다 교세가 우월했던 서울교회는 장길자를 옹립하며 김주철을 총회장으로 내세웠다. 부산교회는 엄수인 이후 약해진 교세여서 이를 막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대부분의 세력을 서울교회에 넘겨주고 간신히 자신들을 지키며 교회의 정통성을 빼앗기지 않은데 만족해야만 했다. 서울교회는 청년들을 동원하여 부산교회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생명책과 안상홍님이 남기신 유물들, 그리고 총회에서 보관해 왔던 서류들을 내놓으라고 무력까지 사용하며 강짜를 부렸다. 조수남 전도사 우태선 목사 등이 몸을 던져 싸워 막아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생명책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


김주철은 부산교회 헌금통장을 보관하던 안**씨를 설득하여 헌금 300만원을 인출하여 도둑질한 후 돌려주지 않았고 가뜩이나 교세도 위축된 부산교회가 당시로는 큰 돈이던 헌금조차 도둑질 당하고 돌려받지 못하자 여러가지 활동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었다. 김주철은 장례식이 있던 당시 사택에 들려 안상홍님의 유물을 뒤지기도 했으나 교회에서 보관한 총회의 제반 자료만큼은 빼앗아 가지 못했던 것이다. 안상홍님이 돌아가시자 장길자의 친인척파들은 용의주도하게 움직였고 부산교인들은 설마설마하며 장례를 치르기에 분주했던 것이다. 장길자 일행이 양산의 장지에 오지 않았던 것도 그들은 장례식 직후 열릴 임시총회에서 교회 정권을 잡기위한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ceo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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